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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쇼코의 미소 - 최은영

by 잼니니 2018. 1. 5.
쇼코의 미소
국내도서
저자 : 최은영
출판 : 문학동네 20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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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이야기가 한권으로 묶여 있다.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고, 잔잔하면서도 그 감정 그대로 이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좋은 문장도 많아서 나중에 북마크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ㅋㅋ

아래는 줄이고 줄여서 정말 좋았던 문장만


<비밀>

'비밀'은 7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은 내용이었다.

내가 할머니 '말자'가 되어 손녀 '지민'이를 그리워하는 맘이 정말 정말 너무나도 이해가갔다.

너무 절절해서 지하철에서 눈물도 훔쳤다는..ㅠㅠ

말자는 지민의 손을 잡고 병원 바깥으로 걸어갔다. 지민이 울 때면 말자는 그애와 같이 산보를 했다. 바깥공기도 쐬고, 변하는 풍경도 보고 하면 서러운 마음이 잦아든다는 것을 말자는 알았다. 말자는 지민이 서러움을 모르는 아이로 살기 바랐다.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겼지 않았으면 했다. 삶에 의해 시시때때로 침해당하고 괴롭힘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민은 삶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지민의 책상에 앉아 말자는 성산항으로 가던 여객선 위의 풍경을 그렸다. 강풍에 지민의 긴 머리칼이 이리저리 날리던 모습이, 얼굴에 붙은 머리칼을 넘기던 그 작고 통통한 손이 보이는 듯했다. 자기 딴에는 어른이라고 했지만 말자의 눈에 지민은 그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였다. 언젠가는 너를 두고 떠나야 하겠지, 하지만 걱정되지는 않아. 갑판 위에 서서 말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힘든 일도 있겠지만 너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네 몫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야. 그때, 말자는 그렇게 믿었었다. 맑게 웃고 있는 지민의 투명한 얼굴을 보며 말자는, 정말 그렇게 믿었었다.


<쇼코의 미소>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직장에 나간 엄마 대신 나를 업어 키운 그였다. 그의 돌봄으로 뼈와 살이 여물었고 피가 돌았다. 효도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느꼈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는 그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더 등을 돌리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이모는 아이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아이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어떻게 자라고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살아서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모는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모의 등에 붙어서 작은 숨을 쉬는 아이가 이모의 몸 밖에 붙어 있는 심장 같다고 생각했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한지와 영주>

우리는 싸움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를 견겼다. 감정을 분출하고 서로에게 욕을 해서 그 반동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싸움도 일말의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받지 않았다.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안에 있었다.


<미카엘라>

딸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볼 수 있던 떄도 있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엄마!"라고 기쁘게 부르며 달려오던 딸이었다. 딸을 품에 안으면 모든 통증이 누그러졌고 다음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났다. 세상의 누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밝고 예쁜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길 것인가.


그 시절은 갔지만 여자는 미카엘라에게서 받은 사랑을 잊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의 은혜가 하늘 같다고 했지만 여자는 자식이 준 사랑이야말로 하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미카엘라가 자신에게 준 마음은 세상 어디에 가도 없는 순정하고 따뜻한 사랑이었다.


읽으면서 여러번 코끝이 찡했다.

최은영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봤는데,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에 대해서 정말 잘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신작이 출간되면 또 찾아서 읽어볼 맘이 있다.


2018.01.0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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